만남 _ 사랑하는 나의 악기, 하프 _ 황세희

만남

 

사랑하는 나의 악기, 하프

 

황세희, 하피스트

 

하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언제 어디서나 듣는 단골 질문 중 하나인데, 여태까지 수백 번 아니 그 이상 들어 본 것 같습니다. 연주자로 활동하며 많은 곳을 다니게 되면서 이렇게 크고 희귀한 악기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많은 분이 여쭤보십니다. 이번 기회로 하프와 저의 만남에 대해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당시 악기 하나쯤은 다뤘으면 하셨던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 감수성을 키워 줄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자 악기 중의 기본이라 불리는 피아노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살 터울인 언니와는 늘 쌍둥이처럼 자라 왔는데, 저희는 뭔가를 배워도 똑같이 배웠고 같은 경험을 교류하며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피아노도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친구들 모두가 배우는 피아노가 그렇게 크게 흥미로 다가오지 않았고, 이를 지루하게 여겼던 저희 자매에게 피아노 선생님은 하프라는 악기를 권유하셨습니다.

하프(Harp).’ 난생처음 들어보는 악기 이름에 마음속 깊이 알 수 없는 호기심이 꿈틀거렸습니다. 하프 인구가 지금보다 더욱 많지 않았던 시절인데, 피아노 선생님이 하프 전공자였던 아주 우연한 계기로 하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나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프가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일산에 위치한 선생님의 스튜디오로 하프를 만나러 가게 됩니다. 하프 스튜디오 문을 열었던 그 순간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공간은 생전 처음 봤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여덟 살이었던 저의 몸집보다 작은 미니 하프부터 시작해 180cm가 넘는 커다란 하프들을 차례로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나도 웅장한 외관에 압도되어 악기 가까이에 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악기의 매력적인 모습에 먼저 반했는데, 그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보니 그 자리에서 바로 온전히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나무의 공명을 타고 울리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무척 따스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주해 주신 가브리엘 포레(Gabriel Urbain Fauré, 1845~1924)의 즉흥곡을 듣고 이 악기를 꼭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언니와 함께 하프를 배우러 가는 날은 저에게 있어서 행복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었습니다. 작고 여린 손끝에 피 물집과 굳은살이 가득해도 아픈 줄 모르고 매주 하프를 만나러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나의 손끝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열 살이 되던 해, 전공을 하기로 마음먹으며 하프를 진정한 저의 동반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의 10대 시절은 입시, 시험, 국제 콩쿠르들로 인해 강도 높은 연습과 훈련의 연속이었으며 뼈를 깎는 고통이 동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슬럼프는 찾아오지 않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청소년기에 하루 10시간이 넘는 연습을 어떻게 스스로 감당하며 채찍질했을까 싶습니다. 같은 악기를 전공하기에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위안이 되어 주는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무엇보다 하프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음악을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는 힘듦과 고통은 어느새 사라지고,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을 연주할 때는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찹니다. 돌이켜보면 하프는 언제나 제 곁에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는 항상 하프와 함께 보냈으며 누구보다도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습니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하프와 교감하며 만들어 내는 음악은 저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전 세계에 있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어느덧 하프와 동행한 세월이 거의 20년이 되어갑니다. 하프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 사랑하는 나의 악기 하프입니다.

 

 

*1995년 출생. 예원학교 수석 입학 및 졸업, 서울예고 수석 입학 후 재학 중 도미, 인디애나 음대 최고연주자과정 수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졸업. 프랑스 국제 하프 콩쿠르 1위 및 특별상(2014), 라이언 앤 힐리 어워드 수상(2014), 이태리 국제 하프 콩쿠르 2(2017), 미국 국제 하프 콩쿠르 4(2019) 등 수상. 하프시스 멤버.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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